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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의 봄(손숙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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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오현 작성일2007-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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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요한/손숙선교사 2007년 3월 선교소식)

◆ 아래는 하요한 선교사님(손숙 선교사님)께서 보내오신 메일입니다.


조오현 목사님께.....

3월을 접어들며 완연한 봄 가운데 평강으로 문안 인사드립니다.
영광교회 성도 여러분의 기도 가운데 이곳의 활짝 핀 봄소식을 집사람 쓴 병상에서의 글로 대신하며 감사를 드립니다.


「지천명의 봄」                                          로뎀나무/ 손 숙

  올해로 나는 지천명을 넘어왔다. 생각은 항상 스무살인데 쉽게 피로를 느끼고 인내심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가끔씩 주위의 우리 또래 여성선교사들의 아프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평생 아프지 않고 살아갈 사람모양 지금 까지 잘 지내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안식년으로 고국을 방문했을 때 고신의료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았다. 그 결과 자궁의 난소에 8㎝정도 되는 종양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혹시나 악성이어서 다른 곳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있으니 자궁전체를 제거해야 된다는 의사의 지시를 받았다.

  지천명으로 가는 길을 “갱년기”라고 했던가!
  항상 파란 신호등에서 꺼질 줄 몰랐던 건강이 “깜박깜박 빨간 신호등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자궁을 들어낸 여성을 ”빈궁마마“라고 했다. 나는 자궁에서 이상 징후가 나타날 때마다 나도 자궁전체를 들어내는 빈궁마마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겉으로는 안 그런 척했지만 내심 여성으로서의 내 인생이 끝난다는 암울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평소에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당신의 일에 수종들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해 왔던 내가 건강 하지 못한 이상 징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자궁은 위나 장 같은 신체기관이지만 성생활, 여성호르몬, 임신, 출산 등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자궁은 사회적 시선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출산과 남성 중심주의적 우리나라 문화의 시각으론 자궁 질환을 드러내어 놓고 이야기하기를 꺼려해서 기도제목으로 올려 놓기도 조심스러웠다. 이러한 것들은 수동적인 방어전으로 또 다른 스트레스를 낳는다.

  나는 나 자신이 무척 건강하고 별무리 없이 사역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해 왔다. 그리고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필연적인 의탁이 있었다. 그래서 난소에서 자라고 있는 종양이 자궁암으로 전이될 수 있는 과정에서도 ‘수술을 하라’는 의사의 지시에 쉽게 수술 결심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설마 하나님께서 나를 암 환자로 만들어 죽음으로 몰고 가시지는 않겠지!”

  그러나 이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홍콩의 인기 여가수 메이옌팡(梅艶芳)이 자궁암 수술 도중 죽은 가운데 또 이어 어느 가수가 자궁암으로 치료 도중 죽었기 때문에 홍콩의 여성들에게는 자궁문제가 아주 민감하게 대두되고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타인에게서 보다는 매스콤이나 주위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나 또한 여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남편은 절대적이었고 여전도 회원들은 전적으로 수술을 서두르기를 원했다. 방학을 앞둔 자녀들도 전화가 올 때마다 야단들이다.

  현지 사정으로 안식년을 채우지 못하고 다시 사역지로 돌아와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서는 “왜? 한국에서 수술을 하지 않느냐?”하시며 “ 안식년 중이니 다시 들어오라”고 안달이시다.

  수술을 결심하고 세계 선교위원회 이총무님께 고신의료원의 나의 자료들을 보내달라고 남편이 부탁을 했었다.  며칠이 되지 않아 곧 M.R.I사진을 담은 C.D와 의사소견서를 보내왔다. 정말 친정과 같은 본부가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현지에서의 의료비는 보험이 없어 광장이 비싸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검사자료를 첨부하면 훨씬 유리 할 것이라는 현지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일을 진행했었다.

  지정된 정부병원에 수술을 의뢰했다. 그 뒤의 일들은 너무나 순조롭게 진행되어 주님께서 직접인도하시고 동행하심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정부병원은 환자들이 많이 밀려 기다려야 했지만 담당의사는 나의 자료들을 보자마자 응급환자로 정초를 넘어 제일 처음으로 수술을 받게 해 주었다.

  그러나 일이 진행되면서 혹시 잘못되어 생명의 끈을 놓아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슬며시 기어 들어왔다. 수술을 준비하면서 허공 속에서 갈 길을 잃은 불안한 나의 모습이 환상으로 보여 지기도 했다. 몇 번이고 의사와 상의를 하고 얻은 결론이지만 자궁수술은 여성으로서의 자격을 박탈한다는 허전함은 묘한 감정을 일으키며 나를 서글프게 만들었다. 내일이면 나도 누군가가 말했던 빈궁마마가 되는 날이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기라도 했는지 가족들과 교인들은 수술실까지 와서 나를 위로해주고 기도해 주었다.  그 사랑의 끈은 수술실 문턱을 넘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힘을 내라고 격려를  했다.

작별의 슬픔을 가슴에 담기라도 했던가-?
마취의사가 코에 마취 호흡기를 붙이며 심호흡을 해보라는 신호를 보내왔다.
나는 몇 번의 긴 호흡을 하며 의식을 잃고 말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수술을 언제 했는지?
간호원들이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무의식적으로 눈을 떠보니 많은 얼굴들이 어른거리며 나는 벌써 병실로 와 있었다.
아-! 살아 있구나!
마취가 덜 깨어서 눈을 오래 떨 수 없어 동궁을 구르며 눈을 감았다 떴다 했지만 의식이 있음은 분명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성공을 확인하며 엄지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내왔다.  나는 나 자신에게 살아 있음을 확인시키고 싶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침대에서 일어나 앉으려고 윗몸을 일으켰다. 순간, '피-익' 쓰러지며 천장이 곤두박질을 치는 현기증에 정신을 잃었다.

" 앗! 위험해요. 수술 실이 터지면 큰일나요!“.  병실을 책임지는 간호원이 나의 몸을 민첩하게 잡았다.

  그날 밤,
  나는 빠른 회복을 위하여 진통제 주사를 거부하며 수술 후의 고통을 참고 침대에서 이쪽저쪽으로 몸을 뒤척이며 수술로 엉크러진 오장육부가 제자리를 잡아 가는데 협력했다.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한 가운데 아픔의 진통을 이겨내는 새벽을 맞으며 가스를 분출해 내는 수술의 성공에 화답했다. 같은 날 수술했던 환자들은 대부분이 내가 링겔주사에서 미음으로 또다시 죽으로 점점 나아길 즈음 겨우 가스분출의 소식을 하나씩 전해 왔다.

  이른 새벽!
  수술직후, 마취에서 깨지도 못한 무의식중에 건네받은 가족의 편지를 읽었다.
  “당신이 마취에서 깨어나면 내가 제일 먼저 축하해주고 싶은데 경쟁자가 너무 많아서
  은혜와 은총 사랑하는 교우들과 간호원들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그래서 일단 제일먼저 환영사를 쓰기로 했어.
  "빈궁마마님 사랑해요".”
  수술 전 중국전통옷을 입고 찍은 사진도 같이 들어 있었다.

  딸의 장문의 환영사에 이어 아들의 글에는
  “마마님 잘 주무셨습니까? 이곳에 오니 편채하십니까? 빨리 일을 마치시고 우리성으로 입궁하십시오. 만약 이성에서 우리가 없는 시간에 불편한 일이 있으면 간호시녀들을 통해 이리로 전화하십시오. 28193240 언제든지 우리들이 지체하지 않고 달려가겠습니다. 마마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옵니다.  아신 은총왕자.”

  장난기 섞인 아들의 글을 보며 아직 실밥도 여물지 않은 아픈 배를 움켜쥐고 웃음보를 터트리는 바람에 터진 웃음은 통증의 아우성으로 이어졌다.
"하하하하하 ~ 아아아아악 흐-윽!!!"

  이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다.
  교인들이 다녀가며 갖다놓은 꽃바구니 위에 사랑의 쾌유 멧세지가 축복으로 소복이 내려앉았다. 병원음식이 부실하다며 챙겨온 중국 전통 약선 음식들과 영양 죽은 실밥으로 꽁꽁 묶어 놓았던 상처를 빠른 회복으로 전환시키고 있었다.
  수술 이틀후가 주일날이라 예배를 드리고 난후 청년회에서는 십여명이 단체 위문을 왔다.  그러나 간호사가 병실의 규칙이 한 병상에 두 명 이하의 방문객으로 금지 되어있기 때문에 방문규칙을 지켜 달라고 했다. 청년회장으로 있는 눈치 빠른 '와이쏙화 자매'는 청년회원들에게 비어있는 각 병상마다 2명씩 위로하며 기도하는 팀으로 나누자고 했다.

  와이쏙화 자매의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순발력 있게 각각 흩어져 환자들을 붙들고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모습은 꽃보다 더 아름답다.

  선교지에 나와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그동안의 씨를 뿌리며 섬겨왔던 형제자매들의 모습은 나의 병상의 고통을 눈 녹듯 가시게 했다. 아직 연약한 그릇이지만 성장해 가는 선교지의 사람들이 아름답다.

빨리 병상을 박차고 일어나고 싶다.
병상에서 읽었던 성경말씀이 떠올랐다.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라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4:12) ”

  퇴원을 하고 나서, 회복은 빨라 입원전보다 훨씬 상쾌함을 느낀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선교사가 되어있다.
  돌이켜보면 죽음을 넘어 2시간이나 넘는 수술을 받고 어쩌면 이렇게 건강할 수가 있을까?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은 육체적인 변화 속에서 다시 찾은 건강은 이전보다 더욱 빛나고 값진 것을 체험한 건강이다.

  한국말로 50살을 “쉰살” 이라고 한다.
  남편은 '쉰살'은 쉬어가는 나이이기 때문에 ‘천천히 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쉰살’이라는 어감이 이것저것 부서져 쉰듯한 그 무엇을 연상하는 것 같아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생각이 난다 쉰이 넘으신 어떤 사모님께 ‘연세가 어떻게 되시냐?’고 물으니 ‘쉰’자는 빼버리고 오학년 몇반(?)이라고 했던 일이..... 모두가 ‘쉰’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쉰살"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표현이다.

  나는 다시 50년 연륜을 감히 자랑스럽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50세는 쉬어가는 나이도 부셔져 쉰듯한 나이도 아니라
  50캬렛(Fifty Carat)의 다이아몬드(Diamond)와 같이 빛나는 값진 나이라고......
  50년이란 세월은 그냥 흘러온 세월이 아니다.
  이속에서는 눈물과 기쁨이 있고, 인내와 은혜가 있다. 그리고 아름답게 영글어 가며 익어가는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아! 얼마나 값진 나이 오십카렛 다이아몬드 나이인가!
  오십살은 뒤를 돌아봐도, 앞을 내다봐도 모두들 넉넉하게 품으며 많은 경험들을 면류관으로 삼고 하늘의 뜻을 알며 달리는 성숙한 지천명의 나이이다.
  나는 오늘도 지천명의 나이 첫해를 달리는 첫 3월의 하늘아래, 경이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아름다운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아직 내가 가야할 길과 아직 내가 해야 할 일들 위에 어떻게 나아가야 함을 깨달으며 푸르름을 향해 달리고 있다.